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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명(李承明, 1969년 8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법률인, 정치인, 그리고 전직 대통령이었다.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독립운동가 이강엽의 손자이자 국회의원 이승헌의 아들이다. 서울대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당시 인천지검 강력부 검사들과 함께 왕룡건설 사건 무마에 따른 반발로 검사직을 사퇴한 것으로 유명하다. 변호사 사무소 운영 중에 신천지당에 가입하여 비례대표 의원이 되었지만 이내 당적을 민주당으로 옮겼다. 이승명은 신천지당과 새민주정치회의의 합당에 자숙의 시간을 갖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잃거나 민주적 방법 대신 과격 노선을 추구하는 세력들, 그리고 부정부패를 배제한 온건 우파 세력을 결집시켜 바른자유당 창당을 주도해 ‘우익 가치를 담은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바른자유당에서 대변인 등을 역임하다 당내 분열에 의해 바른자유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무를 총괄하였고, 이 비대위원장을 끝마친 후에 당내 경선을 통해 바른당 대선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19대 대통령이 되었다. 북한 내전 발발 당시, 북한 내 반란군을 지원하면서 북진통일을 실현했고 이북 재건 사업과 통일을 위한 노력도 하였다.

은퇴 후에는 배우자인 국진영과 함께 각종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이승명은 바른헌법연구학회와 바른형법연구학회를 차려 법학 연구에 힘쓰는 한 편, 좌우 양 진영의 전체주의 연구 및 모델 분류와 헌법가치를 수호하면서 21세기의 전체주의 '복고'에 대한 대비책을 논문·기고문 등을 통해 마련하였다. 미국의 에코먼 전 대통령과 프리덴츠 전 독일연방검찰총장, 야도니 전 요르단 법무장관 21세기 전체주의 재림에 대비할 것을 강조하는 학술 활동을 범세계적으로 해왔다. 이 학술 활동은 NATO 가입국 및 중화민국의 전문가들과 공동 활동을 펼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정부들에게는 국민의 삶을 외면하거나 전체주의적인 방법으로 국책을 이루고자 한다면 국가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며 충고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대통령 시절의 업적들과 통일 선언, 그리고 전체주의에 대비하고자 하는 학술활동으로 2025년 워치지 선정 올해의 잉물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되었다.

현재는 대한민국 망명 정부에서 대통령 겸 외교부 장관을 겸하고 있다. UN 및 NATO 가입국에 특히 미합중국과 독일연방공화국에 대한민국 국권 탈환을 위한 금전적·군수적인 지원을 거듭 요청하고 있다.

생애 Edit

생애 초반 Edit

지금의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이자 광복군 참령 이강엽의 손자이자 베트남전쟁 참전 유공자인 이승헌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는 형으로 이원농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사법시험을 거부하는 장남을 내쫓아서 그는 국민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형과 헤어졌다. 승명은 할아버지이자 광복군 출신인 이강엽이 직접 이승명이란 이름을 지어줬고, 이강엽은 이승명의 모친인 천선자와 함께 이승명을 애지중지하게 키워주었다고 한다. 이승명 본인 또한 아버지인 이승헌과 좋은 관계보다는 갈등 관계로 살아온 시간이 더 많았다고 회고해 할아버지와의 시간이 더 기뻤고 값졌다고 하였다. 이승명은 7살 무렵부터 연정수강철권 등 여러 친구들과 만나 사이좋게 지냈는데 이들은 훗날 이승명이 대통령이 될 때까지도 보직 등에서 챙겨주었다.

이승명은 학창 시절 당시, 연정수·강철권과 함께 ‘정강이 삼총사’로 유명했다. 둘은 학교에서는 물론 동네에서 공부도 잘하지만 싸움을 잘하고 다녔는데 셋은 항상 함께 다녔으며 자신들에게 시비를 거는 불량배들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이 중 연정수는 중2 무렵부터 이사가서 헤어지게 되었지만, 이승명은 편지로 철권과 종종 안부를 전하였다.

그는 서울대학교 공법학과에 들어갔으나 친구들과 함께 학생운동에 참여한 것이 문제되어 자퇴한 이후, 재수하여 국민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했다. 이후 3사단 공병중대에 입대하여 병장으로 만기 전역 후, 사법시험에 응시하여 대학을 조기 졸업한 뒤에, 바로 사법연수원으로 들어갔다. 사법연수원 22기로 졸업하고 바로 검사가 되었다.

법조인 시절 Edit

검사 재임 Edit

신임검사 시절에는 수원지방검찰청에 배치되었다 이후에는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공안부에서 잠시 근무하면서 국가보안법 위반과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사건을 맡았다. 이승명은 검사로 일하면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으며 같은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둔 김웅일 수사관을 만나 그와 여러 이야기를 하며 독립운동가들의 고난과 힘겨운 삶을 듣곤 하였다. 훗날 이승명은 바로 이 김웅일 수사관이 대검찰청 사무국장에 임명되도록 도왔고, 손현범게이트 사건이 터지고나서 그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할 정도였다. 공로연수를 통하여 컬럼비아대학교로 유학을 가 훗날의 미국 정치인들과 사교 관계를 다지는데,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바로 호머 멜트포드 FBI 국장과 이승명이 대통령에 취임할 당시의 미국 대통령인 제라드 에코먼이다.

2003년부터 그는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에서 일하며 국진영 수사관을 만나 그녀와의 연애 관계를 가지다 공개 구혼을 하였다. 이로부터 1년 후에, 둘은 인천지방검찰청 본청으로 옮겨져 강력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승명은 이 때 긴 악연이 될 왕태룡과 마주치는데 당시 왕태룡은 왕룡건설개발의 조직 폭력배 동원 및 사기·폭행 그리고 인신매매 혐의로 왕태룡과 그 휘하 조직원들을 수사하였는데, 이 때 왕태룡은 증인이 될 만한 사람들을 모두 살인교사 및 뇌물을 공여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국진영 또한 이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당시 이승명의 상관이자 인천지검 제2차장검사인 안병수는 이승명에게 증거 불충분에 따라 불기소로 처분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승명과 강력부 검사들은 이에 항의하고 단체로 사퇴하였다..

변호사 활동 Edit

검사직에서 물러난 후, 같이 나온 검사들과 함께 법무법인 바른을 차리며 훗날 같이 일한 문권, 구진우, 신나영 같은 그의 동료 및 후배 검사들과 함께 변호사 업무를 하였다. 인천지검에서 구진우 검사와 같이 따라왔던 손현범과는 이 때 알게 되며 손현범은 구진우보다 이승명에게 더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손현범은 새천년민주당과의 연줄을 이어 이승명이 정계 진출을 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이젠 아내가 된 국진영 또한 이승명을 대외로 잘 보좌하면서 명실상부한 이승명의 보좌관이 되었다. 손현범은 자신이 공천받을 기회를 오히려 이승명에게까지 주었으며 자신은 보좌관으로 시작하였다.

정계 진출 Edit

민주당에서의 시작 Edit

그는 야당 등에서 오랜 보좌관 생활로 유명한 장현범의 주선으로 민주당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승명은 본인이 민주당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당을 나가려고 하였고 손현범은 이를 극구 말렸다. 손현범의 만류에 이승명은 계속 민주당에 머물렀지만, 민주당이 새민주정치회의로 당명을 바꾸면서 신천지당과 합당을 선언하면서 사상 초유의 거대 여당이 되자, 구 신천지당 비허파와 공직자 출신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탈당하였다.

바른자유당 창당 Edit

손현범의 인적 지원과 주현철의 물적 지원으로써, 이승명은 바른자유당(Right Liberal Party)을 창당할 수 있었다. 이승명은 창당을 하며 극단주의자들이나 청렴하지 못한 이들을 솎아내며 정당은 과격파와 손을 잡지 않고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엄격히 준수하는 온건보수 정당임을 선포하였다. 창당 주도는 유승구가 하였지만, 이승명은 바른자유당이 ‘자신의 당’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자신은 대변인에서 머물렀고 당내 선거를 통하여 유승구가 당 대표에, 주현철이 원내 대표로 임명됐다. 그러나 당이 새천지당과 맞서기 위해 여러 인물들을 영입하였기 때문에 극우 성향의 정치인들도 영입하는걸 막을 수 없었다.

불안한 창당과 비대위 체제 Edit

이승명은 당의 입지와 창당 명분에서 드러낸 강경파(과격파) 청산에 실패하면서 안병수와 권무성의 당내 입지가 강해지고 이들을 위시한 강경파들은 당내 온건파들로부터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냉전을 벌였다. 끝내 두 명이 윤리위원회를 통해 출마자격 정지 3년 결정을 받고, 한 명이 화합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고나서 바른자유당 1차 내분은 끝났다. 하지만 유승구가 당 대표를 사퇴하면서 당 대표직을 차지하기 위한 2차 내분이 벌어졌고, 이때문에 이승명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제안하고 위원장에 손현범을 임명했다. 손현범은 탄핵정국을 이용하는 한 편, 당내 계파갈등을 정리하면서 강성찬, 노호 등 31명의 당원들에게 출당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모두 자유기독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대선 출마 Edit

결국 이승명은 바른자유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할 것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당내에서 안병수, 유승구, 반철수가

단일화 합의와 당선 Edit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승명은 75%의 득표율로 대선에서 당선되었다.

대통령 재임 Edit

정의의 정부 출범과 의의 Edit

이승명은 자신의 정부를 정의의 정부로 선언하면서, 법치주의·원리주의에 입각해 각종 범죄와 부정부패 문제를 뿌리 뽑겠음을 약속했다. 또한 경찰관과 소방관들의 위험수당을 210만 원으로 늘리며, 한 편 소방공무원의 국가공무원화를 국회에 건의하기도 하였다. 또 이승명 본인은 직접 검경에 자신이나 자신의 측근과 그의 친인척 비리는 눈치보지 말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을 바래 사건에 관해 수사기관에 전권 일임함을 밝혔다. 부패·실기업 국정조사에서 민영 원내 부대표가 부회장 시절의 탈세 혐의로 거액의 추징금을 냈으며, 비서실장 장현범의 고모부인 장석권 등이 부실 건설사에 연루되자 자신이 직접 사과하며 장현범을 비서실장에서 해임하였다.

주요 정책 Edit

국민연금 개혁안 Edit

이승명은 국민연금의 가입을 강제함으로써, 오히려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일은 있어서 안 됨을 국무회의에서 주장하였다. 국회에서는 자유민당 보건복지위원들과 원내대표 등이 직접 가입과 탈퇴에는 민간 보험처럼 자율성을 보장하는 법안을 발의하였다. 대신 국민연금 지급을 2012년 이전처럼 의무화시키며, 가입 대상자는 총 22년(264개월) 이상을 국민연금비를 납부한 67세 이상의 국민에게만 지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국민 스스로가 행복을 추구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지켜준다는 점을 들어 헌법과 복지 양면을 모두 추구하는 법안이라는 주장과, 지급 의무로 국회가 국민에게 지킬 도리를 준수한다는 의견 등의 찬성 여론이 생겼다. 반면 가입 의무화를 폐지하면 재원 확보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반대 여론이 엇갈렸다.

고등교육기관 개혁안 Edit

대학가를 조직 폭력단이 장악하였다는 지방신문의 기사가 주류 언론에도 실리자, 이승명은 교육의 지나친 사업화와 뒤틀린 학구열이 낳은 폐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승명은 교육과 미래인재 양성에는 관심없고 대학을 오직 사업거리로만 여기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며 이명박 정부 때처럼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목록”을 선정하였다. 그러나 성덕수 교육부 장관은 대학 운영진의 잘못이 대학생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

재정지원이 제한된 대학들은 학교에 국가장학금처럼 직접 학생들을 선별해내어 장학금을 줄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성 장관의 장관령 실시 이후, 성덕수 장관은 "일신상의 이유" 때문에 중도사퇴하였다. 이승명 대통령은 사퇴안을 거부하였으나, 두 번째 안건에는 수리하였다. 후임으로 국민대학교 총장을 맡았던 김창식이 교육부 장관이 되자, 성덕수 장관이 대학 정리 사업과 함께 진행하던 교육재단의 자금 유입 문제도 더는 논의되지 않았다.

국방 대개혁 Edit

방위사업 비리 청문회

방위사업 비리 문제 해결은 이승명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였다. 이승명은 통영함, 수향급 잠수함 사업과 K2 전차 부품 의혹 등의 비리를 전면 조사하면서 사업을 재시행하였고, “허영심에 들어찬 국산화보다는 보장된 안보가 우선”임을 내걸어 독일제 부품을 수입하였다.

또한 이 비리의 배후를 밝히기 위해 국회에서 청문회까지 실시하였으며, 이 국정감사를 통해 수많은 예비역 장교들과 재향군인회, 군 납품 사업체 간부들이 입건되었다. 이 청문회를 통해

남아있는 하나회 출신들의 숙군 사업을 재시행하였으며, 육군보다는 공군 출신들을 합참이나 국방부 등으로 기용하면서 3군 고급 인적자원 간의 균형 조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 조화는 이승명의 절친이자 공군 장교 출신인 강철권 장군의 악용으로 실패하였다.

병영생활 개선 감사

하 일병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병영생활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승명의 장병복지 개선 정책안이 다시

법인세 유연화 Edit

장애인 고용 촉진, 출산 여성 지원, 높은 사회환원율에 따라 법인세를 최소 0%에서 최대 30%를 적용하는 법인세 유연화 정책을 제시했다. 정부의 강제보다는 기업 및 민간 경제단체의 자율성있는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의도이다.

부실·부패 기업 국정감사 Edit

왕룡그룹, 신부건설, 창렬푸드, NDB저축은행 등의 조폭이 그 근간인 기업들과 분식회계 등을 통한 기업 재정 상태를 조작한 기업들, 그리고 그런 기업들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정부 사업권을 주거나 지원금을 준 관계자들을 대통령령과 국회의 협력으로 국정감사를 실시하였다.

부패·부실기업을 이끌거나 지원하였다는 의혹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이승명과 동 당의 한갑원, 민영, 김상호 의원 등이 있었으며 민주당에도 적지 않은 수의 국회의원이 연루되어 많은 논란을 낳았다. 이승명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국정감사가 국민들에게 반기업 정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기업 문화를 육성하고 국민들이 기업을 보는 관점도 다르게 만들 계기"라 밝히며 여당 의원들이 연루된 일에 관해 “뼈와 살을 깎는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지금은 형법의 원칙(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킬 뿐이다.”고 밝혔다. 이 국정감사가 공정한 기준으로 부정부패를 청산할 기회를 얻었다는 지지 여론에서 경제 활동은 물론 의정 활동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왕룡그룹 문제

특히 이 국정감사에서는 언론에서 노동조합 탄압과 근로기준법 위반, 폭력 동반, 부실 공사, 성 접대 등으로 연이어 기사에 언급되는 왕룡그룹의 문제도 다루었다. 이에 왕태룡 측은 이승명이 10여년 전 검사 시절 때, 자신을 기소하지 못해 자신의 경력에 흠집이 된 것을 자신에게 억울한 트집을 잡고서 최근 경제 정책 실패로 떨어지는 지지율을 잡으려는 의도일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특검 조사에 따르면, 왕태룡이 자유민당, 민주화합당, 새겨레연합, 심지어 통일진보당에게도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장부가 드러났다. 한 편 인천지방경찰청은 왕태룡이 도피를 위해 부하의 명의로 배를 빌리고 다량의 출금을 목격하였다는 정보를 받았다. 인천지검 특수수사부는 왕태룡과 그 일당의 출국 금지령을 신청하였고, 인천지방경찰청은 도피 우려가 매우 크다고 간주, 왕태룡 등의 긴급체포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왕태룡과 측근들은 교통법 위반과 함께 추격하는 경찰들을 공격하여 공무집행방해죄 등의 현행 범죄가 추가되었다. 왕룡 사건이 국정감사 등으로 해결되자, 이승명의 지지율은 23%씩 올랐으며 왕태룡은 국참재판을 신청하고 배심원으로 자신의 심복을 심어두려는 비리를 시도하려다 적발되어 뇌물공여 죄목이 추가되었다. 왕태룡은 살인교사, 공무집행방해죄, 교통법 위반, 근로기준법 위반, 성매매특별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범죄단체 조직 혐의, 뇌물공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성매매 집중 단속 Edit

성매매 집중 단속은 지희진이 “영관인”이라는 별명을 얻을 무렵에 나온 정책안이었다. 지희진과 선혜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들이 성매매에 종사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있는 상황 등을 이해하며 이들을 위한 일자리 탐색과 직업훈련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매매 종사자(성 노동자) 단체들과 남성주의 단체에서는 이 집행에 각자 다른 이유로서 우려와 항의를 표명하였다. 양성평등연대 대표 김ㅇㅇ는 남성들 중에서도 성매매에 종사하는 사람이 있으나, 여성들에게만 지원을 해주냐며 반론을 하며 차라리 성매매를 합법화시켜달라는 민원을 냈다. 현양남성연대 부대표인 피노원은 자신들이 원해서 몸을 파는 여성들에게까지 지나치게 혈세를 낭비한다고 주장하며, 여성가족부의 폐지와 지희진의 정치 개입을 막으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피노원 부대표는 "이승명 대통령은 암탉이 울면 집안에 나아가 국가가 망한다는 사실을 각인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으며, 이에 이승명은 대변인을 통하여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나, 개인의 과격한 언행이 국민 수준을 평균 이하로 떨어뜨릴까 하여 대통령께서 걱정하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편 민성노련은 성노동자 또한 노동자로서의 권익을 보호받아야 하며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인정함을 요구할 것을 대변인을 통해 밝히면서 양성평등연대 및 산하의 지지와 공·사창제도의 합법화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남성연대와 민성노련가 성매매 합법화의 의도와 차후 목표 등이 갈라지면서 대립이 심화되었다. 여기에 남성연대 회원들의 광화문 광장 집단 폭행 사건과 지지 스캔들이 터지게 되면서, 이 사건들은 이승명 정부의 성매매 단속을 강화시키며 성범죄 피해 여성 지원을 위한 예산(여성가족부 예산)을 증액하는 계기가 되었다.

안전보장감사위원회 설치와 소방방재청 부활 Edit

국정감사와는 별도로 하거나 국정감사를 보조하면서 안전시설 및 군사 안보 시설의 점검 상태 등을 감시하는 임시 위원회를 설치하여 매년 국감 때마다 동반 파견하였다. 안보감사위는 주로

국방정보 전문가, 소방안전설비 전문가, 그리고 일반 정보 전문가를 동원하는데 이들의 신원은 소방안전설비 전문가를 제외한 모두가 비공개로 되어 있다. 이승명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는 정보 보안과 부정부패 예방의 이유로 감사관들의 신분을 비공개로 하였음을 밝혔으나, 해명을 번복하며 감사관들의 전문성 논란이 계속되자 논란이 커졌다.

자원 문제 개혁 Edit

이승명은 석유가 점점 희소해지며 값이 높아지는 시기에 화석연료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며, 대체에너지를 개발하여 실용화시킬 수 있도록 각 기업에 요청을 하였다. 한 편 유류세를 인하한 대신, 그는 환경 보호세를 신설하였다. 이는 화석연료의 사용량과 화학 물질 사용량에 누적하는 세금이다. 이 세금은 환경오염 유발물질 사용량에 비례하여 과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형평성과 기업의 경영 의욕 저하 등을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이승명 정부 임기 종료 후에 즉시 폐지되었다.

지방세 개혁안 Edit

이승명은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가 확립하려면 지방자치 역시 넓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기존 8:2 비율에 해당하는 국세 및 지방세를 7:3으로 줄이며 지방 정부의 재정자립 확대를 지원하였다. 또한 이승명은 주택 문제와 복지예산 부담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방자치단체장들과의 모임에서 국세와 지방세를 비급진적으로 균등히 나눌 방법을 토론하였다.

그러나 이승명의 임기가 끝난 후에도 지방세 개혁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그나마도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예산으로만 가게 되어 지자체 예산 확충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또한 지방세 비중을 높여 국세 비중이 낮아지자 중앙정부 차원의 SOC 구축과 국방예산 감소 등은 불가피해졌고, 이에 지방세 개혁안 반대론자들은 이승명이 국민복지를 지방에 일임하고자 지방세 개혁안을 내놓았을 뿐이라고 비판하였다.

외교 정책 Edit

미국 Edit

이승명은 특히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의 유학 시절 친구들 모두가 미국의 국무차관과 대통령, 연방의 판·검사들인 덕분에 그의 대미 외교는 '사교 클럽 외교'라고도 불리었다. 미국의 파병에도 적극 지지와 지원을 보냈으며, 미국에서 요구한대로 대러(대소) 제재를 가하였다. 그러나 국내에선 한국 기업들의 미국 시장 의존율을 높이면서, 지나친 친미 정권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중국 Edit

일본 Edit

유럽 Edit

독일 Edit

기타 국가 Edit

대북 문제 Edit

이승명은 취임 직후부터 북한에게 대량살상무기를 해체하자는 목적의 대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승명의 제안을 거절하였고, 이에 이승명 대통령은 오히려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한 결의안 채택을 국회에 요청하였다. 심지어 UN 총회에서 북한의 인권문제와 일본의 전쟁 범죄 비판, 그리고 우간다 인권문제를 비판하는 연설로 2시간을 이용했다. 북한 측은 이승명을 연일 비난하며 평양에서는 <이승명 쌍통밟기>라는 행사도 개최하였다.

2019년 11월 23일, 조선인민군 내부의 반정부 측 군부가 정변을 일으켜 평양을 장악하였다.

퇴임 이후와 현재 Edit

퇴임 이후 이승명은 자유민당 상임고문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그는 항상 자유민당 고문으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합의점을 찾되 따뜻한 심장을 잃어선 안 된다."라는 말을 종종 하였고 정치적 모토로 삼았다. 또 한국전체주의연구학회를 차리며 자신과 건국대, 국민대의 교수들을 초청하여 다양한 유형의 전체주의를 연구하여 외부인과 토론이나 학술 저서 등을 나누기도 하였다. 이승명과 함께 연구한 독일인인 테오도르 프리덴츠는 훗날 독일 총리가 되어 남유럽과 아시아의 전체주의화와 과격화를 경고우려하는 UN 총회 연설과 그리스, 일본의 극우화 정책, 그리고 가나의 학살사태를 간접적으로 막았다.

평가와 비판 Edit

긍정적 평가 Edit

민주주의 발전 Edit

이승명은 비록 보수 진영의 지지를 업고 대통령이 되었으나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 등을 존중하였다. 특히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현장에서는 평화 집회를 약속한다면 자신 역시 공권력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주의하리라 밝히며 당부하며 토론과 비폭력적 시위를 권장하였다.

또한 국회와의 소통을 하는 한 편, 사법부(검찰청·법원)와 방송계 인사들과는 거리를 두며 KBS 사장은 임명 이후, 수신료 인상안 조정 협의 외에는 접촉을 오래하지도 않아, 공정언론 수립에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정부패 청산 Edit

이승명은 임기 중에 방위사업 비리 조사, 부실기업 사업 선정 진상조사를 진행하면 측근 비리에 스스로 사과하며 법외 처벌을 하는 모습을 보이며 부정부패 청산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또한 장차관급 공무원과 국군의 사령관직 임명 시에는 학연·지연 의혹과 각종 비리 문제가 없는 청렴한 후보들만을 내세워 여야의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기획재정부 장관과 노동부 장관, 과학기술부 장관은 야당 사람들을 기용하는 등, 획기적인 인사행정을 집행하여 야당의 존중과 격려를 받았다.

성평등적 인사 정책 Edit

이승명 정부의 3차 개각에서는 장관급 공무원인 여성의 수가 헌정사상 최초로 절반이 되었다.

인권문제 개선 Edit

이승명은 2020년 신년연사에서 대한민국의 사각지대 곳곳에서 여전히 인권이 박탈된 사례들이 많다며 군대, 기업, 학교 등을 예시로 들며 각 관할부처에 개선 명령을 내렸다. 또한 직접 모교와 근무했던 부대를 찾아가 인권 및 폭력사건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고 직접 교육까지 하였다. 또한 퀴어퍼레이드 개최에 관해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결사의 자유를 예로 들며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 자유 민주국가에서도 성 소수자 인권을 중요히 여길 것을 강조해 최소한 성 소수자에 대한 모욕과 인권침해만은 절제하자는 발언을 하였다. 그러나 뒤이어 동성혼이나 국가의 성 전환비 비용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밝혀 보수 기독교 단체와 성 소수자 단체 양 쪽에서 지탄받았다.

외교 치적 Edit

이승명의 대외 정책은 비록 성공적인 자원 외교는 없었지만, 우방국과는 더욱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때로는 타협점을 모색하고, 때로는 정의로운 독트린을 펼쳐 미국의 외교관들은 이를 "리 독트린(Lee Doctrine) 이라 칭하였다. 특히 이승명은 베트남·에티오피아 등의 제3세계에서 구호 활동과 함께 과거사를 청산하는 기회로 삼았다. 베트남의 호앙 주석은 이승명의 사과에 오히려 감사를 표하였고, 미국의 프리먼 대통령은 아시아에서 “미국과 정의와 가장 친한 친구(Most Friendly friend of the United States and the Justice)” 라고 찬사를 표할 정도였다.

행정부에 토론 문화 정착 Edit

행정 체계 개선 Edit

부정적 평가 Edit

경제 안정 실패 Edit

이승명은 초기에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했다가 철폐하였고, 물가 조정 또한 실패하여 경제 성장은 커녕 경제 안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단기적인 교육 정책 개혁 Edit

초·중·고등학교의 수학 교육의 난이도를 줄이는 방안은 논의만 시행되었으며, 대학의 거시적인 경쟁력 강화도 주도 기획자인 성덕수 교육부 장관의 사퇴 이후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공무원 노조 탄압 Edit

이승명은 공무원은 근로자의 신분 이전에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며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지닌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공무원의 강경한 노조 행위는 곧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할  우려가 있어 이승명 정부는 공무원 노조를 강경하게 탄압하였다. 특히 법원노조의 요구사항인 인원 충당은 예산을 추가로 확보하여 시행하였지만, 시위를 주도한 공무원들은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해임시켰다.

대북 강경 노선 Edit

이승명은 북한 정권 수뇌부를 거짓말을 잘하고 세계를 상대로 양아치 행위를 일삼으면서, 같은 민족을 탄압하길 즐기는 “악랄하고 부패한 군벌 집단”이라고 비판하였다. 비록 북한의 정변으로 인한 붕괴 때문에 끝내 북한과는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으나, 이승명의 완고한 대북 협상은 18대 국회 이후보다 심한 한반도 냉전 체제를 가져왔을 것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검사 출신 중심 인사 Edit

이승명 정부의 인사 조치에서는 유난히 많은 검사 출신들이 고위직에 임명되었다. 이 중에서는 이승명이 검사 시절에 가까이 지냈던 검사나 사법연수원 동기 검사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에 지나친 코드 인사라는 비판이 있었다.

우방국 의존형 외교 Edit

논란 Edit

가족 관계 Edit

가족 이름 경력 비고
조부 이강엽(李鋼燁, 1910~1989) 한국광복군 참령

대한민국 육군 중령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의 부관

김홍일 군단장의 참모

이승헌(李承憲, 1944~2021) 대한민국 육군 준장

베트남전 유공자

前 유신정우회 의원

이강엽 사후 이승명과 관계단절
이원농(李元農, 1967~) 평검사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내정자
형수 앨리샤 사르가스(A. Q. Sargas, 1977~) 귀화 시민
본인 이승명(李承明)
배우자 국진영(菊眞怜, 1974~) 前 검찰수사관

前 민우회 이사

EAVMUA 창립자

이승명의 검사시절 보좌 수사관
아들 이승재(李承材, 2000~2024) 경찰관리(경장) 이승명 대통령 재임 중 순직
아들 이범석(李範奭, 2000~) 육군 장교 이승명 재임 중 임관
이청천(李靑天, 2001~) 민사고 졸업 후 대입거부 선언
이명진(李明眞, 2005~) 청년 논객 이승맹 대통령 재임 중 민사당 활동
동생 이정희(李正希, 1972~) 예비역 육군 중령 UN 평화유지대 다수 지원
제수 히지야마 미토라(聖山 美虎, 1974~) 일본 육상자위관 히지야마 야쿠자 일가의 장녀
조카 이미호(李美虎, 2008~)
조카 히지야마 마사아키(聖山 正明, 2009~)

저서 Edit

<관습법과 법 감정>

<쉽지 않은 순간들> : 대통령 시절의 자서전

<아시아의 전체주의, 어떻게 막을 것인가?>

<제다이와 풀어보는 21세기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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