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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당원들의 예상과 달리, 안병수는 당 대표 선거에서 무참하게 깨졌다. 당내 강경파가 언론에 연일 나오는 것과는 정 반대의 결과에 안병수는 이 결과를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배신감, 모멸감, 그리고 패배감이 병수의 시신경부터 후각, 혀, 그리고 발가락까지 피부 곳곳에 퍼지는 기분이 든다. 속으로 자신이 아닌 정종익 의원을, 이승명 대통령의 측근을 밀어준 그들 모두를 개, 돼지로 손찌검하며 욕설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그들은 개돼지가 맞다. 그러니까 자신이 아닌 다른 멍청한 놈을 뽑아준 것이지. 병수는 그렇게 자기최면을 걸듯 스스로만의 확신에 자신을 가뒀다. 그러나 병수는 애써 태연히 패배를 인정하고 명예로운 축하를 건네주는 척 미소를 짓는다. 평검사 시절부터 선배 및 높은 지위의 검사들에게 강압적으로 해야하는 그 익숙하지만 가식적인 미소에 병수는 슬슬 진절머리가 났다.

" 후후, 축하드립니다~ 우리 정종익 의원님. "

" 어유, 어허허허…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

정종익은 비록 이승명처럼 같은 검사 출신에 한 번도 부장검사 이름을 단 적이 없었지만, 그 또한 승명과 못지않은 신념과 야심이 있었다. 무엇보다 종익은 평검사 시절, 그리고 병수가 부장검사 시절에 모욕받은 것은 기본이요 병수의 압력으로 사건을 엉터리로 조기종결시킨 경우도 있었다. 그 사건은 종익이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언론에 뿌리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것은 일종의 물귀신 용도로 쓸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종익은 그걸 당장 또는 먼 미래에 쓸 생각은 없고 추호도 쓸 생각은 없었다. 안병수가 자신에게 비수를 갈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제 그는 병수를 짓밟아 이겼고, 병수가 특유의 가식적인 웃음을 짓게 하곤 그 속을 타오르게 만들었다. 그의 입장에선 분명 고소한 일이라 한 동안은 그걸 터뜨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병수의 경우라면 다르다. 병수는 어린 시절부터 오직 자신만이 올라야 하고 승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지금까지 살아온 인간이었다. 물론 당장 그것을 터뜨린다면, 자신에게도 해가 가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병수는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적'들을 무찌르고 승리와 명예의 맛을 쟁취할 수 있는가를.

" 부르셨습니까? "

" 치헌아. 영호 아직도 그쪽 업계에 발 담그고 있냐? "

" 그… 바지사장 두고 아직 하긴 할걸요? 전 걔가 회사운영하는 것만 주로 들어서요. "

" 조만간 보자고 하자. "

윤치헌 수석보좌관의 동생, 윤영호는 한 때 영남계 조직 폭력단의 회계사로 일한 사내였다. 체형은 말랐고 그가 할 줄 아는 공격이라고는 고인모욕과 부모모욕, 인종차별 뿐이었지만 오직 돈의 흐름과 소유만으로 전국구 조폭이 된 인물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제 대한민국의 조폭은 싸움을 잘 하고 명성이 있는 자가 아니라 돈을 쥔 자가 하기 때문이다. 조직들 사이의 의리라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듯. 영호는 안병수가 검사 시절부터 안면이 있었고, 병수가 곤경에 처할 때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몰래 도움을 구한 적도 있지만, 병수가 정계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손을 끊어 막역하고도 막연한 사이가 되었다.

" 그리고 이젠 좀 조용히 살라고 해라. 회사 운영한다는 놈이 그깟 일로 검사들 인력 낭비하게 만들면 안 돼~ "

" 아 예, 물론입죠. "

윤영호는 상당한 호남차별주의자였다. 사외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전라도 출신은 절대로 뽑지 말라는 인사정책을 실시하는 것도 모자라 전라도 사람과는 웃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런 인성때문에 몇 번 폭행죄나 모욕 등으로 검찰에 고소당한 적이 있지만, 그 때마다 병수가 담당검사를 찾아가 무마시켰다. 그렇게 병수가 검찰청을 찾아간 적이 국정감사에 따른 방문 회수보다 더 많을 지경이었다.

" 영호 왔느냐. "

" 예, 형님! "

호리호리한 체격의 강마른 인상의 사내가 바짝 군기든 듯 각을 잡으며 병수가 적당히 내미는 손을 귀중품 모시듯 두 손으로 넙죽 받는다. 제딴에는 굳건하고 군기잡힌 사내로 보이고자 애쓰는 듯 싶었지만, 마른 태도와 그의 목소리 때문에 그의 '군기어린' 태도를 보면 보통은 우스꽝스럽게 느낄 법하였다.

" 너 사회에서 헛소리 좀 작작하고 다녀, 내가 돕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야. "

" 하, 형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이 전라도놈들이 하는 짓거리가-- "

살이 살을 타격하는 소리가 방안을 메우며 영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 이 염병할 놈의 새끼가 어디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말대꾸를 하고 지랄이야? 너희 아비가 그렇게 가르쳤냐? 아니면 느 형이? "

" 죄송합니다. "

" 죄송하면 느 형하고 아비 면전에 똥칠하는 짓 좀 적당히 하고 다녀라. 때때로 이 생각이라는건, 그냥 입닥치고 숨기는게 가장 현명한 법이라고. "

병수가 품속에서 시커먼 담배를 꺼내자 영호는 꺼내기가 무섭게 불을 붙여준다. 영호는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고, 병수 역시 고맙다는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다. 담배연기를 한두 모금 길게 내뿜던 병수는 아까보다는 다소 누그러진다.

" 너, 이젠 회사 경영만 하고 있는거냐? "

" 예? 아... 예, 그렇죠. 그것만 해도 워낙 바쁩니다. 그리고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참 기업인들을 못 살게 굴기론-- "

" 옛날에 끌고다니던 '개'들은? 어디 보신탕집에 넘겼냐, 아니면 친한 놈한테 넘겼냐? "

병수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영호는 의외로 싱긋 웃으며 호탕한 웃음을 흘린다.

" 제가 설마 개들을 바로 먹거나 풀어주겠어요? 재개발이나 경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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