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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권(姜喆權/姜鐵拳, 1969년 10월 13일 ~ )은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대한제국의 정치인, 군인이다. 12·22 정변의 주모자이자 대한민국 전 대통령 이승명의 붕우였다. 서양에서는 "강철 주먹(Iron Fist)"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부터 이승명연정수와는 매우 친한 사이였다.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하여 차석으로 입학하여 수석으로 임관하였고, 성균관대학교에서 사학 박사까지 수료하였다. 공군 출신으로 동아프리카 전역, 민다나오 탈환전투, 새벽의 구덩이 작전에 참전한 지휘관이자 에이스 파일럿으로 유명하였다. 이후 평양내전에서 합동참모차장 자격으로 참전하였지만, 평양 지역과 신의주 및 흥남까지 무차별 정밀 폭격을 지시했다가 민간살상을 우려한 이승명 당시 대통령에 의해 가로막힌 전적이 있다. 이 일로 소장으로 강등당하여 해병대와 육군에서 자신과 뜻을 같이 할 장성 및 청년 지휘관들을 모색하였다.

12·22 정변을 주모하면서 민족복벽최고위원단 부단장을 지냈고, 대한제국황실회를 비롯한 구한 황족과 관련된 단체들을 대한황실회로 통합시켜 제국 구성과 황제 즉위를 사실상 기획했다. 합동참모본부를 국군원수본부로 개편했고 국방부를 국군부로 개편하였다. 경제성장 7개년 기획을 선포하여 단기적인 경제발전 계획이 아닌 향후 장기적으로도 안정되고 가능성이 있는 경제개발을 기획하였고, 치흐야 계획을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국방개혁을 실시하였다. 중국과 미국, 그리고 소련 사이에서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쳐지지 않는 외교를 지향하며 부패한 공직자들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지 않고 숙청함과 동시에 소방공무원의 처우와 예우를 개선한 점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2030년대에는 파티클럽 부회장국으로 승격하도록 하여 반다문화, 반국제주의 노선에 협력하였다.

그러나 2028년에는 화합민주당과 새나라정치인연합, 그리고 애국공화당의 정치인 및 당직자들을 모두 학살하고 사형을 미루고 있는 장기복역수들을 한꺼번에 사형시킨 점, 그리고 박정희 정부나 전두환 정부 시절에도 완전히 건들지 않았던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고 폐지한 것 때문에 인권과 법치를 파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파티클럽과 함께 FTA 폐기와 이주민 자결주의를 채택하였다.

생애

생애 초기

지금의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당시의 강철권의 아버지인 강철인은 철원에서 근무하던 육군 장교였고 어머니는 교사였다. 양 부모 모두 철권에게 엄하지만 이기적인 삶을 지양하라는 교육을 받아왔다고 한다. 아버지인 강철인이 수도경비사령부로 발령받고 서울로 이사가게 되면서 철권의 어머니는 교사직을 그만두었고 철권 또한 서울에서 살게 되었다. 이 때 이승명과 연정수, 이현권을 알게 되어 어린 시절부터 정강이 사총사로 동네에서 알려졌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인 강철인이 상관의 군납비리를 알게 되어 고발했지만 오히려 상관모욕과 비밀누설 혐의로 징계를 받고 중령에서 강제로 전역하게 되는 일이 있었다. 이 일로 강철권의 집안이 급격하게 곤궁해지면서 강철권의 작은 동생인 철구는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산업단지에서 일을 시작하였고, 큰동생 철민은 고시공부를 포기한다는 이야기로 가족과 갈등을 빚었다. 이 일은 강철권의 어린 시절 기억 중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훗날 제국에서 군납비리와 공무원 인사개혁을 급진적으로 단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군인 시절

연정수, 강철권, 이승명, 이현권, 사총사의 3명이 대학에 바로 합격한 것과 달리 그는 육군사관학교에 지망했지만 떨어져 재수를 하게 되었다. 입시 직전, 강철권의 아버지는 선임 장교의 군납비리를 고발하다 역으로 찍혀 좌천되고 중령에서 사실상 강제제대하게 되었다. 이 때의 일이 강철권이 육군사관학교에서 떨어진 사실상의 계기라는 의혹이 있었지만, 당시 인사관계자들이 정변 이후 숙청당했기 때문에 제대로 알려진 바는 없다. 강철권은 1년 재수 끝에 공군사관학교에 차석으로 입교하여 수석으로 임관하였다. 그는 항공기 조종술을 배우며 공군비행사로도 활동했으며 해외파병과 주한미군 장교들과의 친분 도모로 공군에서 재능을 인정받게 되었다.

2010년경, 제2롯데월드 건설에 공군 수뇌부들이 정부에 항의하다 단체로 강제전역한 사건이 발생하자 강철권은 이에 분개하고 김은기 총장의 억울한 경질을 공론화시키려 했다가 여당 뿐만 아니라 야당 정치인들로부터도 외면과 배신당하게 되었다. 과거의 일과 김은기 총장이 경질된 사건으로 기성 정치권에 대한 강력한 불신과 적개심을 품게 됐지만, 2018년에 오랜 친구인 이승명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승명과 가까이하며 사석에서도 경어를 쓸 정도로 충성을 맹세하였고 승명 또한 공군부대에 방문하거나 시찰할 때에는 항상 강철권 장군을 대동하게 하였다. 대통령의 측근이라는게 군 내 공공연한 비밀이 된 강철권은 최연소 소장까지 진급했고, 2022년에는 중장까지 진급하면서 합동참모차장이 되었다.

그러나 평양내전이 발발할 때, 강철권은 정변군이 중국에 붙거나 또다른 괴뢰정권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정변군에 붙지 말고 평양에서 흥남까지 전술폭격을 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이를 알게 된 이승명은 직접 폭격만큼은 제지하였으나, 강철권은 대통령 훈령을 어기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초급 장교들과 함께 전투기를 이륙시켜 북진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승명이 기체사격도 불사하면서 강철권의 편대를 막으라는 긴급명령에 북진은 미수로 끝났고, 이승명은 이 일로 강철권을 대기발령내었다.

이승명 정부 이후

강철권은 이승명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대기발령 상태였으며, 그나마 다음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강철권은 중장 신분으로서 무보직이었던 3군 유일의 장성이었다. 또한 이승명 정부 이후의 정부의 헌법훼손 행위와 반민주적인 처사 등이 심각해지며 한 편 부동산 정책과 인플레이션까지 찾아와 반정부시위가 연일 커져만 갔다. 강철권은 자신을 따르던 초급 장교들과 자신과 가깝고도 요직에 있던 장성들과 함께 정변을 기획하였다.

정변과 집권

12·22 군사정변

2027년 12월 22일, 강철권은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헌병과 공군 헌병 및 방공포병들을 이끌고 청와대로 진격하였다. 동생인 강철민이 청와대 비서실에서, 강철구가 청와대 경호실에서 일했으며 철권의 충실한 첩보원이 되어주어왔기 때문에, 대통령은 강철권이 칼을 들고 청와대 안에 들이닥치기 전까지 쿠데타 발발 사실 자체를 몰랐다. 한 편 수도방위사령부는 미리 초급 장교들에게 손을 써 사령관이 암살당했고, 수도군단은 수도권의 해병대가 견제하였다. 공군은 모두 강철권을 지지함을 밝혔고, 육군 내부에서 강철권에 저항하거나 대통령 충성파인 장교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대한제국 선포

강철권은 구 정부의 수뇌부들을 참수하고 그 머리를 광화문 광장에 내걸어 구정(舊政)을 타파하고 유신을 다질 것을 선포하면서 역사를 바로잡아 뿌리부터 잘못된 국가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로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강철권은 대한민국 헌법을 폐지시키고 제국기본법을 헌법으로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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